2008년 8월 15일 금요일

아더왕 이야기속 원탁의 기사들은 정말 평등한 관계였을까?

오래된 책장을 정리하다가 중학교 시절의 손때묻은 원서 한권을 발견했다.
아더왕 이야기를 다룬 영어책이었다. 그 시절에 영어공부 한답시고 들고다녔던 모양이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책이니 그리 어렵지도 두껍지도 않았다.

사람이란게 오래된 추억을 꺼내들고 기뻐하는 습성이 있는지라
눈오는날 강아지 새끼마냥 신이나서 그 책을 정독하던중..
문득 원탁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원탁이 뭐냐고?

"원탁은 말 그대로 둥근 탁자로 이 탁자의 어디에 앉던지 모두가 동등했으며, 지위나 계급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위대한 군주 밑에서 확립된 고결한 전우애의 상징. 상하의 차별이 없는 평등성을 시사.
 기사들의 우위 다툼을 멈추게 하기 위해 아더왕이 고안해냈다고 한다." 라고 엠파스 검색에 뜨더라.

(그 외에 예수와 12사도 어쩌구 하는 내용도 있지만 그건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서 조금 벗어나니 생략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평등? 상하 차별이 없는?

진실한 목적이 저것이라면 아더왕은 영락없는 팔푼이다.
아니 실제 목적은 저것이 아니었을수도 있다.

네모난 탁자에 앉든 둥근 탁자에 앉든 우선적으로 왕이 앉게 마련이다.
왕 없이 회의하는것 봤는가? 아더왕이 코흘리개 애도 아니고 당연히 참석해야 마땅하다.
즉, 최고 권력자가 앉는 시점부터 기사들간의 평등은 깨어지게 된다.

이 원탁의 좌석수와 크기는 정확히 알려진바가 없다고 하니, 나름대로 추리해 볼수밖에 없었다.
(중세 이후 예수의 성배전설과 최후의 만찬등의 이야기와 맞물려 왕을 제외한 13자리로 묘사된것이 많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시계 방향으로 앉게되네?


※ 흔히 묘사되는 13번째 자리를 제외하고 앉는다 치면, 왕의 오른편이 빈 자리가 된다. (위 그림 참조)
그러니까 왼편 가까이 앉는 기사들부터 순위를 매기면 된다.
흔히 오른팔이 넘버2라 이야기 하는데, 여기서는 왼편이 넘버2가 되는 것이다.
아더왕과 먼 자리일수록 소외받는 거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곁에 두려는 지도자의 습성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설사 자신과 가까운 인사가 뛰어난 자질을 가졌든 못 가졌든간에 앉히고 본다. 숱하게 봐와서 잘 알지 않는가?
당연히 가까운쪽과 먼쪽의 다툼이 생길게 안 봐도 비디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이런 경우 생기지 않을라나?



※ 13번째 자리가 없이 12명이 탁자에 꽉 차게 앉았을 경우. 크게 네개의 세력이 만들어진다.

첫번째로 넘버2는 왕의 오른편, 넘버3는 왕의 왼편이 된다.

두번째로 왕의 오른편에 앉는 기사들이다.
당연히 넘버2를 추종하는 자들이 가깝게 자리할터이니 반원 형태로 파벌이 만들어진다.
반대편에 넘버3 패거리가 앉게 될테고.

세번째로 왕의 왼편에 앉는 기사들이다.
넘버2 패거리에 밀리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원탁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세력이다.

네번째로 왕과 마주앉은 기사.
왕이 12시방향에 앉아있다면 마주보는 6시 방향에는 필연적으로 그를 적대시하는 기사가 앉게될 가능성이 높다.
혹은 적대하진 않아도 오히려 넘버2나 넘버3보다 세력이 더 큰 기사일수도 있다.
원탁을 직사각형 탁자로 바꿔 생각하면 이해하기 더 쉬워진다.
최고 권력자인 왕과 마주앉는 깡다구를 보여주는 기사라면 만만한 상대는 아닌것이다.  
반대로 일상생활에서는 마주앉은 위치가 사교적인 자리일 가능성이 더 높다.
(소개팅을 가면 대부분 상대녀와 마주앉지, 바로 옆에 앉는 경우가 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파벌은 어디에나 있다

결국 아더왕 이야기속 평등은 탁자의 모양과는 상관이 전혀 없다.
처음부터 그들은 평등한 관계가 될수 없었다.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장치이지만,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아더왕 본인이 자리하게 됨으로써 원탁의 평화는 깨어지게 되는걸 그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만든 장치속에서 허우적대는 기사들을 보며 '돌발영상'보는 재미를 느꼈을껄?

100명중 99명이 평등해도 나머지 1명이 더 높은 계급자라면 그에게 99명이 휘둘리게 된다.
우리가 돈이나 권력을 따라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그 주체가 사람이든 무생물이든 손에 움켜쥐기 위해 몰려든다. 혼자나 짝을 이뤄서.

모든 인간은 평등할 권리가 있다고 모두들 떠들어대지만..
우리 역시 아더왕의 원탁에 앉아있는 기사들 신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는 원탁만 없을뿐...


(아래 이미지는 본문과 별 상관은 없습니다. ^^; 넘버2다 넘버3다 하는 단어를 쓰다보니 생각나서 삽입한...)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누가 넘버3래!! 나 넘버2야!


댓글 6개:

  1. 서열이 재밌네요~~~

    멋진 분석 잘보았습니다!

    답글삭제
  2. @재밍 - 2008/08/19 08:10
    생각나는대로 끄적인 글이라 좀 난잡합니다.

    그런데도 재밌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

    답글삭제
  3. 역시 완전한 평등은 없군요. 다 철저하게 계산된 세상 아아~

    답글삭제
  4. @파초 - 2008/08/25 23:09
    글쎄요.. 어딘가에는 이상적인 세계가 분명 있을겁니다.

    그리고 방문 감사합니다. ^^;

    답글삭제
  5. 음...너무 계산적으로 보시는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 시대에 있지 않고 아더왕의 생각이 '이랬을 수도 있다' 가 아닌 '이랬다'라고 단정 짓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



    한번 냉소적으로 세계를 보게되면 어떤 것이든 잘못으로만 보이는 법이지요.

    답글삭제
  6. @방문자 - 2009/03/03 10:57
    먼저 오래된 글에 댓글 달아주신것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이러 저러 하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으로 글을 쓴 것입니다. 단정적으로 느끼셨다면 역시 제 글솜씨가 부족한 탓이죠. 그리고 항상 냉소적으로 사는건 아니랍니다. 요즘 분위기가 좀 그렇잖아요? :)

    좋은 하루 되세요.

    답글삭제